김성은 파티시에
- solbam
- 2022년 8월 10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9월 19일
파인다이닝이라는 유려한 오케스트라에서 마지막 여운을 만들어내는 파티시에. 솔밤의 김성은 파티시에가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요리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정말 기억하기도 힘든 어린 시절부터 페이스트리에 관심이 많았지만, 다른 분들처럼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한 것은 아니에요. 요리와 관련된 직업을 갖는 것을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방학이 되면 취미 수준으로 클래스를 듣는 정도였죠. 제주도에서 국제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앞두었을 때 요리를 전공하겠다고 하니 부모님께서 크게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어요. 혹시 부모님께 ‘공부하기 싫어서 도피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미대와 경영대에 모두 합격한 후에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제가 공부가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가는 거라고요. 그때 부모님께서도 마음을 바꾸셨고, 저는 그렇게 미국의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솔밤의 오픈 멤버로서 지금까지 한 팀에서 함께 성장해 오셨다고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운 좋게 셰프님과 인연이 닿았어요. 코로나 시기라 한국에 귀국하는 것이 나은 선택이기도 했고, 대학 선배이기도 한 엄태준 셰프님은 주방에서 엄격하고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는 이야기를 지인에게 듣고 면접을 보게 되었죠. 그렇게 솔밤이 오픈하던 해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제게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목표였어요. 막내로서 늘 긴장하였었기에 실수도 잦았지만, 열심히 하는 데 집중했어요. 오픈 멤버로서 팀이 변화해가는 과정에서 저도 함께 적응하고 성장해왔고, 특히 첫 직장인 솔밤에서 팀워크를 배우고 스스로도 시야가 많이 넓어졌어요. 수년간 팀원들이 바뀌기도 했지만, 솔밤의 핵심이 되는 멤버들은 지금까지 큰 변동 없이 함께해오며 이 레스토랑의 스타일과 문화를 형성해 왔죠.
이전에는 제 일만 잘하면 된다고 근시안적으로 생각했는데, 페이스트리팀의 수셰프로 진급하고 나서부터는 팀을 이끌고 좋은 결과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게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어요. 선배들의 고충도 새삼스레 잘 이해하게 되었고요.
레스토랑이 성장하면서 브랜드 행사나 해외 유명 레스토랑들과의 협업도 많아졌어요. 뉴욕의 나로(Naro)에 방문했을 땐, 그곳에서 1~2년치 이벤트 일정을 미리 기획하고 철저히 준비한다는 점이 정말 인상 깊었어요.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돌아보게 되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요리나 레스토랑의 미적 감각, 정체성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많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기억에 남는 협업 경험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홍콩의 Cristal Room by Anne Sophie Pic과의 협업이에요. 그들의 디저트는 밀푀유였는데, 페이스트리 셰프가 직접 와서 마치 예술 작품을 만들 듯 하나하나 정성껏 준비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디저트는 머랭과 튀일 등 섬세한 요소들이 많았고, 자칫하면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들이었는데, 그런 재료를 모두 핸드캐리로 들고 오셨더라고요. 마치 아기를 품듯 비행기에서 꼭 안고 왔다고 하셨는데, 그런 열정이 정말 기억에 남아요. 튀일을 하나하나 손으로 휘어 만드는 모습에서도 장인정신이 느껴졌어요. 또 제라늄, 겐마이차, 소바차 등 한국에서 자주 쓰지 않는 재료를 활용하는 방식에서도 새로운 영감을 받았어요.

솔밤의 디저트는 어떤 스타일인가요?
한국적인 색이 은은하게 묻어나는 디저트를 추구해요. 전통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는 전통음료인 수단에서 영감을 얻은 디저트를 준비했어요. 저도 처음엔 몰랐던 전통 음료였는데, 한식 관련 서적을 보다가 알게 되었어요. 떡을 시원한 꿀 차에 넣어 먹는 전통 음료인데, 요즘 유행하는 버블티나 여름 화채와도 닿아 있는 부분이 있어서 매력적이었어요.
그 외에도 약과 같은 전통 다과를 버터 대신 참기름을 넣어 만든 사블레처럼 새롭게 해석하기도 해요. 이렇게 전통과 현대의 요소가 솔밤만의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디저트를 만들고자 해요.

디저트는 어떤 방식으로 개발하시나요?
엄태준 셰프님이 먼저 재료 아이디어를 주실 때도 있지만, 저희가 먼저 서베이를 해서 제안 드리는 게 일반적입니다. 정기적으로 메뉴 개발 미팅을 하면서 솔밤만의 디저트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어요. 하나의 완성된 디저트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도 좋지만, 먼저 소스, 폼, 아이스크림 등 각각의 요소를 완성도 있게 준비해요. 이렇게 주요 요소를 정교하게 다듬은 후, 그것들을 조합해 디저트를 완성하는 방식을 선호해요.
저는 한국 재료를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예를 들어 복숭아만 해도 생산지에 따라 맛과 향이 다르고, 시기에 따라 다르게 출하되거든요. 그런 세세한 차이를 들여다보고, 계절과 풍경을 담은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왜 디저트 전문점이 아닌 레스토랑을 선택하셨나요?
저는 공연 보는 걸 정말 좋아해서 매주 뮤지컬을 보러 갈 정도인데요,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무대 위에서 완성된 장면을 만들어내는 게 늘 감동이에요. 저는 파인다이닝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의 특별한 순간을 위해 여러 전문가가 함께 협업하고 통합된 경험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껴요.
페이스트리 샵은 몇 가지 메뉴를 정해두고 손님이 골라 가는 구조라면, 레스토랑은 훨씬 더 복합적인 협업과 인터랙션이 필요해요. 잘 기획된 흐름 안에서 각자의 역할이 맞물리는 그 조화가 너무 매력적이고, 저에게 큰 동기를 줘요.


솔밤에서 일하며 느낀 팀의 문화는 어떤가요?
솔밤은 주방과 홀이 잘 어우러져 있는 팀이에요. 오픈 멤버로서 처음에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긍정적인 태도로 서로를 응원하며 호흡을 맞췄기에 어려움이 힘듦으로 다가오지 않았어요. 팀원들과의 소통도 훨씬 잘되고요. 홀 팀과의 작은 눈빛이나 수신호만으로도 언제 요리를 내야 할 타이밍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팀워크가 많이 발전했어요.
4년 차가 되면서, 점점 제가 보여드리고 싶은 디저트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은 한 파트의 수장이 되어 디저트를 만들며, 요리는 물론이고 팀원들과의 소통에 대한 책임감도 함께 느끼고 있어요.
롤모델이 있다면?
해외에서는 뉴욕 Lysee의 이은지 셰프님을 롤모델로 삼고 있어요. 실제로 뵀을 때도 에너지가 넘쳤고, 지식과 커리어 면에서도 따라가기 어려운 분이시니까요. 국내에서는 엘라보레의 김요솔 셰프님을 존경해요. 수셰프가 되기 직전, 그 분의 디저트를 먹으러 팀원들과도 자주 찾아갔었는데,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시며 “후배들이 찾아오고 좋아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그런 따뜻함을 가진 선배가 되고 싶다고 다짐했어요. 저처럼 제주도 출신이시기도 해서 더욱 반갑고요. 디저트는 결국 마음과 사랑을 나누는 달콤한 작업이잖아요. 저도 디저트를 통해 따뜻하게 소통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과 솔밤의 스타일을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방향을 추구하고 싶어요. 솔밤이 오픈할 당시 10명이던 팀이 이제는 25명까지 늘어났는데, 셰프님 밀씀대로 사람이 많아지면 한 마음이 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모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음식, 스타일, 플레이팅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장인 엄태준 셰프님의 생각이고, 저는 그 생각에 제 아이디어와 개성을 더해 좋은 팀워크로 발전시켜 나가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다가오는 2026년에도 좋은 디저트를 선보이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예요.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드는 게 쉽진 않지만 그 방향을 추구하고 있고, 팀원들과 함께 열정을 쏟아 부은 만큼 평가 기관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요. 또 아직 저희 디저트 파트에는 스타주를 받은 적이 없어요. 저 역시 스타주 시절에 많이 성장했기 때문에, 학생들과 함께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저의 인생관은 “지금을 즐겁게 살자”예요. 셰프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팀원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서비스일 수 있지만, 매일의 손님에게는 그 하루가 유일한 경험일 수 있다.” 그래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매일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후회 없이 이 시간을 소중히 보내고 싶어요. 안 하고 후회하기보다는, 후회 없이 열심히 하는 쪽을 선택하고, 후회할 일을 애초에 하지 않자고 다짐하며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채워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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