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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밤, 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솔밤이 처음 손님을 맞이하고 1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엄태준 오너셰프와 함께 그간을 돌아보며, 솔밤의 초심을 잃지 않고 단단하고 힘있는 꿈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봅니다.





가오픈 기간을 포함해 1년의 시간이 흘렀는데, 어떤 특별한 일들이 있었나요?

“장인의 길에 모멘텀은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특별한 계기로 발전한다기보다는, 매 순간이 치열한 자기 극복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편한 환경 속에서 특별히 고통스럽거나 인상적인 시기가 온다기보다는, 그냥 매 순간이 계속 이어지는 수행이었던 것 같아요.


늘 결정의 순간이 이어집니다. 그때마다 타협을 안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그것을 지켜 왔어요. 견디고, 또 견뎌내는 과정 속에서는 지금 무엇이 이루어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제 경험상 그렇게 시간을 보내야, 나중에 돌아보면 성장이 이루어져 있더라고요. 셰프로써, 팀으로써, 요리와 서비스 모든 부분이 지루하고 꾸준한 길 속에서 발전을 하죠.





매 계절, 모든 메뉴를 바꾸면서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이 있었나요?

제가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했을 때, 저는 재료만 보고 메뉴 구상이 다 떠오르는 그런 천재적인 셰프는 아니라고 봐요.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 뒤 가다듬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스타일이거든요.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저는 오랜 기간,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더 나은 결과물을 정제해내고, 좋은 아이디어도 많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그것을 제 일상이자 루틴으로 만들었죠.


자기 능력과 한계선 안에서 편하게 일을 하는 것은 쉬워요. 조금이라도 그 경계를 깨고 범위를 확장하려고 하면 고통스러운 것이 너무나 당연해요. 저는 제 한계를 넓히려고, 고통을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이번에 솔밤이 4계절 모두 새로운 메뉴를 만들며 1년을 보내고, 다시 가을 메뉴를 선보일 차례가 되었는데, 한치 요리를 대표적으로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계절에 맞는 요리라는 것이, 1년 전에 만들었던 완성도 높은 요리에 조금 더 개선점을 더해 메뉴로 만드는 경우도 흔하거든요.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온전히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에 비해서는 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번 가을 메뉴를 구상하며 작년에 했던 랍스터 디쉬의 완성도를 더 높이는 방향으로 가려고 했고, 직원들과 함께 테이스팅을 했는데 “솔밤에서 늘 나오는 스타일의 요리 같고, 무난하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완전히 다 원점에서 생각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시간이 많지도 않았는데 꼬박 3주를 들여 식재료를 다시 찾고, 책을 보고, 레시피를 짜 보고, 갈아엎기를 반복하며 결국 완전히 새로운 한치 요리를 만들었어요.



솔밤 2022 가을메뉴의 한치 요리


그 과정이 매 순간 웃음이 나고 즐거운 것은 당연히 아니죠. 오히려 고통에 가까워요. 잘 해야 된다는 스트레스, 일이 끝나고 새벽까지 내내 책을 뒤적이고 공부를 하며 잠을 못 이루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제 마음이 그렇게 되고, 그렇게 해야만 직성이 풀려요. 이 과정을 이겨내고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면 그 성취감이 엄청나거든요. 제 한계를 넘어선 느낌이랄까요.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더 나아지고, 경계를 넓혀 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디어가 동시에 여러가지가 떠올랐을 때, 어떤 분들은 하나는 이번 시즌에 적용하고, 다른 아이디어는 그 다음 여유가 될 때 적용하자고 결정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시간과 압박에 쫓기면서 스스로를 몰아붙여야 결과가 나오더라고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지 않고 그냥 해야 무엇이든 결과물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음에 하자고 하면 스스로가 나태해질 것을 알기에, 타협 없이 제 모든 것을 매 순간 쏟아넣고 있죠.



아참, 많은 분들이 런치는 언제 오픈하는지도 궁금해 하셨어요.

디너 코스를 줄여서 보여주는 방식의 런치 메뉴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늘 솔밤에서의 식사가 좋은 공연, 혹은 좋은 노래 한 곡과 같이 기억되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세상 어느 가수가 자기 4분짜리 노래를 2분으로 줄여 부르고 싶겠어요? 아니면 3시간짜리 영화를 하이라이트만 편집해서 1시간 30분에 자르고 싶은 감독이 얼마나 될까요? 저는 그런 마음이에요. 아예 디너와 완전히 동일한 코스의 런치를 선보일 수는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인력과 운영의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긴 어렵더라고요. 아마도 먼 훗날, 언젠가는 그렇게 해 볼 수도 있겠지만요.




솔밤의 팀워크가 좋기로도 유명한데요.

사람이 가장 중요해요. 팀을 구성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공부하고, 고민도 하는 편이에요. 기술이 발전해서 아무리 사람을 대신하는 쿠킹머신이 생겨난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파인다이닝을 구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봐요. 사람이 사람 사이에서 감정을 어루만지지 못한다면 완성될 수가 없는 것이 이 분야거든요.


팀을 구성할 때,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지보다 애초에 어떻게 어떤 사람을 뽑을지부터 고민해야 해요. 저는 우선은 기술과 실력보다는 태도를 먼저 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정말 팀에 ‘필요한’ 사람들만으로 모두 모여 있죠. 솔밤의 모든 역량은 결국 팀이 만들어내는 것이고요.


솔밤은 ‘엄태준의 솔밤’이 아니라, 저희 팀원 모두의 솔밤이에요. 우리의 스토리를 말하고, 표현해나가는 공간이죠. 그래서 엔딩 크레딧도, 매 주 소개하는 팀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정말로 중요하다고 봐요. 이 과정에서 본인의 역할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노력할 수 있는 환경이 생겨나니까요. 지금 1년간 영업을 하며 솔밤이 제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자리잡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모두 팀 덕분이에요.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원래 사람과 사람이 일을 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수 없어요. 부부도 싸우는걸요.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쳐다볼 수 있도록 묶어 주는 역할이 어렵고, 여전히 숙제에요. 단순히 이해관계에 따라 누가 무엇을 더 많이 가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잘 하려는 열정이 부딪칠 때, 때로는 작은 소통 문제가 서운함이 될 때가 있기도 한데… 이런 상황을 잘 감지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죠.


무슨 프로젝트를 하든, 선결조건이 팀원들 간의 ‘합의’에요. 책을 보면 팀원들이 합의에 이르게 하는 기술을 소개하기도 하고, 저도 공부를 하며 적용도 해 보지만 현실 속에서 반은 맞고 반은 틀리더라고요. 그 틈과 빈 공간을 채워 나가려고 애쓰는 것, 계속 동기부여를 하며 의미있게 일할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의 솔밤은 어떤 모습일까요?

솔밤은 제가 처음에 마음에 품은 모습에 정확히,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가가고 있어요. 하지만 그 최종적인 결과가 어떤 고정된 형태는 아니에요. ‘솔밤’이라는 거대한 유기체에 가깝죠. 자기 스스로 발전하고 진화해 나가는 생명체처럼요.


제가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제 아이에게 어떤 습관을 가지게 도와줄지, 또 어떤 인성을 갖추게 할 지 제가 교육을 하겠지만 이 아이가 성장해서 어떤 인간으로 살아가고,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는 제가 알 수 없잖아요? 솔밤도 방향을 다듬어 가겠지만 그 최종의 모습이 무엇일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오래 요리를 하겠지만,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난다면 솔밤을 이끄는 다른 셰프의 색이 더 들어가고, 그들의 경험과 지식, 창의성이 다 드러나는 공간이 될 수 있다고 믿거든요. 이렇게 제가 생각하지 못한 그런 곳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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