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밤의 메뉴판에는 모든 팀원의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솔밤’이라는 하나의 색 뒤에는 다채로운 빛을 품은 팀원들의 꿈이 녹아 있음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엄태준 셰프가 엔딩 크레딧에 담은 마음을 소개합니다.
보통 레스토랑은 셰프 한 명이 대표하는데, 솔밤은 모든 팀원의 이름을 적은 엔딩 크레딧이 흥미롭습니다.
레스토랑을 기획하며 ‘솔밤’이라는 색은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할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솔밤의 음식과 와인을 포함해 사람들의 미소, 응대, 목소리, 온도, 공간의 향, 조도까지 수많은 요소가 총체적으로 어우러지며 오롯하게 ‘솔밤’이라는 응집된 이미지를 만들게 기획했어요.
솔밤의 음식을 어딘가에서 케이터링을 하거나, 거의 온전한 상태로 포장을 해서 집에 가서 즐긴다고 해도 그것은 ‘솔밤 기억’이 아닐 것입니다. 음식이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정확히 규졍하기는 어렵지만, 모든 팀원이 각자의 위치에서 뿜는 사람의 에너지가 모여 전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마음과 의도를 명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영화를 보다가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영화가 끝나면 보통 감독이나 주연 배우를 기억하게 마련이지만, 말미에 쭉 이어지는 엔딩 크레딧이야말로 영화의 진짜 마침표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엄태준 셰프에게 팀은 어떤 의미인가요?
솔밤은 명백히 ‘팀’이 만들어낸 공간입니다. 어느 날, 저를 낯선 도시에 데려다 놓는다면 바로 솔밤 같은 레스토랑을 만들지 못할 거에요. 하지만 모든 팀이 함께 간다며 이야기가 다르죠.
사실 셰프들은 자신의 정체성과 에고(ego)를 표현하는 것에 큰 의미를 둡니다. 그 욕심이 없다면 셰프라는 직업을 견디는 것이 힘들어요. 하지만 그 어떤 셰프도 혼자서는 본인의 정체성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으니, 아이러니합니다. 솔밤의 색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내는 성과임이 명백하고, 따라서 팀이 중요해요. 팀에 대한 셰프의 소양을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 수는 없어요. 셰프가 가지는 기준이 팀에 적용되며 시너지를 낼 때, 비로소 공간이 완성됩니다.
지난 1년간, 모든 팀원의 이야기를 소개했어요.
결국은 사람이니까요. 그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이에요. 그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이 자리까지 왔고, 무슨 생각을 하며 일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쉬는지… 시시콜콜한 이야기 같지만 한 명 한 명 사람을 이해할 때 팀의 응집력이 생깁니다. 파인다이닝은 그 어떤 분야보다 사람 사이의 감정을 어루민지는 일이에요. 기술이 발전해서 아무리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한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파인다이닝 특유의 마음을 구현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밤은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나요?
팀을 구성할 때, 어떻게 성장해 나갈 것인지보다 애초에 어떻게 어떤 사람을 뽑을지부터 고민해야 해요. 저는 우선은 기술과 실력보다는 태도를 먼저 보려고 했어요. 진심을 가지고, 저와 뜻을 같이 할 수 있어야 기술적인 발전도 의미있게 사용되더군요. 그래서 지금은 정말 팀에 ‘필요한’ 사람들만으로 모두 모여 있습니다.
솔밤 팀의 분위기는 어떤가요?
글쎄요, 제가 말하는 이야기와 팀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를 것 같기도 한데요. (웃음) 사실 팀원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미안하지만, 세상에 고통 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만약 자기 위치에서의 업무가 그저 편하고 행복하면 더 이상의 발전은 어렵다고 봅니다. 안주하는 순간, 세상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리 위치는 뒤로 가게 되거든요.
발전하려는 열심과 진심이 없으면 저희 팀에서는 함께 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을 더 뽑아 팀원을 늘리는 이유는 일을 나누고 부담을 덜기 위해서가 아니라, 각자가 한 단계 높은 무언가에 집중하며 새로운 종류의 고통을 맞닥뜨리고 발전해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챌린지가 크게 느껴지네요!
안주해서 편안한 것과, 발전하며 행복한 것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본질적으로는 행복해야 무슨 일이든 길게 지속할 수 있으니까요. 행복하게 발전할 수 있고, 발전하며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어요. 한편으론 제 행복은 무엇일까 요즘 여러가지 생각이 들어요. 요리사로써의 성취와 투쟁, 보이지 않는 전투에서 이겨내고 더 나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며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솔밤을 키워가며 조금 바뀌어 가는 것 같아요.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 셰프의 행복은 무엇인가요?
셰프의 가장 큰 행복은, 식사를 하러 온 분들이 제가 기획하고 상상한대로 솔밤의 색을 오롯이 느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눈에 저희 팀원들이 보이더군요. 솔밤에서 기뻐하며 즐기는 손님을 뿌듯하게 보는 팀원을 보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팀원이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보일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엔딩 크레딧에서 보이는 것처럼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만든 솔밤. 앞으로는 어떤 모습일까요?
왜 솔밤이 생겨났는지 근원적으로 올라가보면 거기에 미래의 모습이 있을 것 같아요. ‘솔밤’은 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담은 곳의 이름입니다. 안동 봉정사 끝자락, 소나무가 가득 우거져 있고 차분하면서도 초록빛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곳이었지요. 비치는 달빛이 선명하게 느껴질 만큼 굉장히 고요하면서도 집중력이 있는 공간입니다.
어린 시절, 솔밤에서 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또 이 소나무 숲의 에너지에 오롯이 집중하고, 자연이 주는 커다란 울림을 느껴 왔습니다. 앞으로 이곳 또한, 제 기억 속 솔밤의 모습처럼 공감각적인 울림을 주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음식과 서비스에 집중하고, 이 모든 에너지가 한데 뭉그려져서 가슴에 좋은 느낌으로 와 닿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음식을 하는 셰프이지만, 사실 음식도 어떤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솔밤에서 저희가 진정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의 50% 정도는 음식이 전달해 줄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여전히 반이 남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의 나머지, 공간을 채우는 음악과 향, 빛, 색채, 웃음, 그리고 함께 하는 분들 사이의 대화까지. 이 모든 것을 충실히 꾸려 ‘솔밤의 마음’을 전할 것입니다.
Photo by 그리드스튜디오 류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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