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에 대한 집념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배성민 가드망제는 솔밤을 떠나 또 새로운 도전을 이어갑니다.
요리를 왜 시작하게 되셨나요?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했어요. 중학교 재학시절까지는 농구를 했는데, 고등학교 진학을 하려고 하니 부담이 되더라고요. 운동을 하려면 일단 기약 없이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제게 정말 그런 재능이 있을까 고민도 많이 되고요. 고등학교 진학을 결정하는 시기에, 학교에서 진학설명회 같은 것을 많이 하잖아요? 그때 조리와 제빵 관련한 진로 소개 시간이 있었는데, 제 마음이 거기에 닿았어요. 그 전까지는 칼도 한 번 안 잡아보고, 오믈렛과 스크램블 에그 차이가 무엇인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막상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한없이 빠져들더라고요. 그렇게 좋아하는 길을 찾은 것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학창시절엔 무엇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조리학교를 다니면 보통 ‘대회’ 준비를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대회 요리에는 큰 흥미를 못 느꼈어요. 무조건 현장에서 배우는 게 좋았죠. 나이가 어리고 경력도 없으니 당연히 받아주는 곳이 없었는데 그래도 뷔페에서는 제 자리를 찾을 수 있더라고요. 학교를 다니던 때에는 그렇게 뷔페 아르바이트를 했고, 방학에 시간이 좀 더 많이 생기면 파스타를 파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나 일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았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은 힘들게 일했지만, 제가 일을 하면서 돈도 벌고 무언가 가치를 만들고 있다는 게 참 즐거웠어요.
그리고 솔밤까지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10대였을 때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기에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우선은 ‘돈’을 좇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스물 두 살 정도 되던 무렵, 가정 형편이 많이 나아지면서 저도 주변과 제 자신을 돌아볼 계기가 생기더라고요. 하지만 바로 학교에 진학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현장에서 좀 더 나은 배움을 얻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일단 군대 문제를 해결하려고 군대에 다녀왔고, 예전부터 제 마음 속에 있었던 ‘파인다이닝’ 업장에서 배워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지요. 집안 사정 때문에 급여가 너무 중요하던 시기에는, 다이닝 업장에 다니면 상대적으로 급여가 높지 않다는 허들이 있으니 엄두가 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려고 하니 어떻게 어디서부터 지원해야 할지 막막하더라고요. 주변 선배님들과 동기들에게 도움을 청하니 스타주를 받아주는 업장에서 일단 일을 배워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미쉐린 1스타, 2스타 레스토랑들에서 조금씩 일에 대한 큰 그림을 보고 배운 뒤에 솔밤에서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지금 솔밤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솔밤에서의 지금 역할은 ‘가드망제’로써 코스의 앞부분 메뉴 위주로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시즌마다 조금씩 업무가 달라지고 있는데 요즘에는 셰프님께 생선에 대해 좀 더 배워보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고, 고등어 손질 등을 하고 있지요. 솔밤에서는 제가 지금까지 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하며 많이 배우고 제 시야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전 경력과 비교해 파인다이닝 업장에서의 일이 더 힘들지 않나요?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지금의 제 모습이 고등학교 시절 제가 상상한 모습에 가까운 것 같아요. 솔밤과 이전 업장을 통해서 제가 생각하고 일하는 방식에 대해 정비할 수 있는 기준이 세워졌다는 점에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힘든 날도 있었지만, 무언가를 해보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파인다이닝 업장이 파스타 매장보다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손님을 대하고 음식을 만드는 디테일에서 훨씬 더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각이 가미되고 있어요. 식재료에 대한 스펙트럼도 넓어지고, 같은 재료라고 해도 다룰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고요.
앞으로 솔밤에서의 포부가 궁금합니다.
저는 요리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요리를 하는 사람으로써 맡는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고 생각해요. ‘셰프(chef)’는 자신의 의도와 색을 담은 음식을 창조하는 예술가의 영역이고, ‘쿡(cook)’은 그런 셰프의 방식대로 뛰어난 기술을 사용해 훌륭한 퀄리티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제작자의 영역을 담당하는 것 같아요. 훌륭한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쿡으로써 기술적인 성취를 이루어야 해요. 지금의 저는 좋은 쿡이 되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이지요.
일단 좋은 쿡으로써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제게 중요하게 다가와요.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이 행복감을 느끼는 데에서 대부분의 요리사가 보람을 느끼겠지만, 지금 저는 셰프님이 기획한 요리를 의도대로 ‘정밀하게 제작하는’ 기술을 연마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래서 좋은 퀄리티로 조리를 할 때, 혹은 더 효율적으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때 성취감이 커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 되겠죠. 저도 언젠가는 창작자로서의 셰프를 꿈꾸니까요. 지금 솔밤에서는 엄태준 셰프님이 기술과 창의성을 연마할 수 있는 계단을 잘 만들어 주신다고 믿고 있어요. 저희 솔밤에는 ‘천하제일 요리대회’라는 것이 있는데, 팀원이 자기 이름으로 신메뉴 하나씩을 만들고 서로 품평을 해요. 정말 좋은 메뉴는 다음 시즌 메뉴로 넣을 수도 있고요. 이런 것을 준비하고 피드백을 받으며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는 느낌이에요.
어떻게 충전을 하며 여가를 보내시나요?
제가 꽤 낭만적인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책을 읽거나, 좋아하는 사람과 얘기를 하는 게 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됩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요. 그리고 저는 스트레스가 된 상황들을 다시 생각하며 복기해요. 다음번에 어떻게 하면 그러지 않을 수 있는지… 그게 오히려 제게 정신적으로 더 편안함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운동도 즐겨 해요. 웨이트와 러닝은 꾸준히 하고 있어요.
10년 뒤 나의 모습은…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전히 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어요. 10년 뒤, 혹은 20년 뒤의 제 모습을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계속 발전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것만 확실해요. 기술이 되든, 내면이 되든, 정신적인 성장이 되던지요. 하는 일의 형태나 직급, 위치보다는 그런 점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요.
영원히 파인다이닝 씬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지금은 이곳을 통해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본이 탄탄하게 연마되면 바비큐나 국밥, 토종 한식도 배워보고 싶고요. 아직은 막연한 생각이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들로 다양한 가게를 여러 개 가지고 싶어요. 라멘, 와플, 이런 각각의 아이템과 개성이 있는 곳들을요. 물론 그 계획 또한 바뀔 수도 있겠지요. 끊임없이 배우고, 발전해 나가면 또 멋진 길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