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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연 헤드 소믈리에

  • diningmediaasia8
  • 9시간 전
  • 6분 분량

 

소믈리에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친한 형이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는데, 그 형과의 대화를 통해 저도 막연히 '술을 다루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 관심에서 출발해 소믈리에라는 직업에 대해 조금씩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금세 매료됐습니다. 소믈리에 관련 책도 사보고, 직업 전망도 알아봤죠. 특히 "와인 바이블"이라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어요.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사촌형이 부모님을 함께 설득해 주셨고, 그렇게 소믈리에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자연스럽지만 단단한 인연의 시작이었어요.

 

와인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단순히 마셔보는 것 이상의 공부가 필요했을 것 같아요.

대학에 들어가 처음 와인을 접했을 땐, '마셔보는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느낀 건, 결국 와인은 지식이 90%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와인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려면, 체계적인 지식이 반드시 필요해요. 어떤 와인을 마셔도, 그것을 기억하고 해석하는 능력은 결국 지식의 체계 속에서 가능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공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소믈리에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새로운 빈티지가 나오고, 시대에 따라 미감도 변화하죠. 그 방대한 정보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선 끊임없는 탐구가 필요합니다. 다만, 확실한 보람과 보상이 있다는 점에서 이 일은 참 매력적입니다.

 

솔밤에 오기 전에는 어떤 경력을 쌓으셨나요?

대학 시절에는 학업과 병행해 현장에서 경험을 쌓았어요. 분당 정자동에 있는 중국요리 기반의 와인바에서 서빙부터 칵테일까지 여러 일을 했고, 그 경험이 직업에 대한 확신을 주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는 정식당에 입사했어요. 입사 1년 반 후에 주니어 소믈리에가 되었고, 5년간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많은 자극과 배움을 얻었습니다. 선배들이 항상 질문을 던졌고, 저 역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공부하고 또 공부했어요. 선배들 스스로도 끊임없이 도전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저 역시 늘 공부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게 되었죠.

 

솔밤의 오픈 멤버인데, 그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전 직장에서의 5년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었어요. 제 자신이 정체된 느낌이었고, 그 틀을 깨기 위해선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퇴사 후 한 달쯤 지나 엄태준 셰프님을 소개받아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합니다. 셰프님의 눈빛과 말투, 솔밤을 위해 준비해온 3년간의 시간, 앞으로의 10년 비전… 모든 것이 진심으로 다가왔어요. 단순히 직원을 뽑는 것이 아니라, 함께 팀으로 성장하자는 제안이었고요. ‘솔밤의 엔딩 크레딧’처럼 모든 팀원이 주인공이라는 마인드도 정말 신선했고, 저 역시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솔밤 오픈 초기의 상황은 지금과 또 많이 달랐을텐데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셰프님, 매니저님, 그리고 저 셋이 카페를 전전하며 회의와 사무작업을 하던 시절이 있었고, 공사 현장도 직접 발로 뛰며 챙겼죠. 소프트 오픈 후에도 서비스팀은 단 3명뿐이었어요. 예약이 열 명도 안 되던 시절부터, 미쉐린 스타를 받은 현재까지 모든 순간이 생생합니다.

 

우리가 하는 서비스는 단순히 테이블을 운영하는 일이 아닙니다. 고객과 마주하는 방식, 응대의 뉘앙스, 서비스의 온도… 따뜻하면서도 날이 선 섬세함이 공존해야 해요. 팀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춰가며, '솔밤다움'을 만들어가는 시간이 지금까지의 여정이었습니다. 함께 미쉐린 스타를 비롯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가며, 지금도 여전히 솔밤은 성장 중입니다.

 

와인 리스트 구성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와인 리스트는 소믈리에의 얼굴입니다. 디테일 하나하나, 오타 하나까지 신경 씁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리스트가 저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솔밤의 요리와 조화를 이루는가입니다. 손님이 어떤 와인을 고르시든, 그 와인이 요리와 조화롭게 어울려야 하죠.

 

솔밤의 요리와 주류 페어링 중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나요?

굴과 소테른의 페어링이 가장 인상 깊습니다. 디저트 와인인 소테른을 첫 코스에 매칭하는 건 파격적이었고, 팀 내부에서도 우려가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굴의 짠맛, 미네랄, 단맛, 바다 향에 소테른의 단맛과 산미가 오히려 밸런스를 맞춰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과와 딜 주스, 크루통이 함께 들어가는 디쉬였기에, 산뜻한 산미와 어린 소테른의 영함이 굴의 여운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었죠. '이렇게 굴을 먹어본 건 처음이에요'라며 웃으시던 손님들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또 최근에는 솔밤의 안동찜닭 요리에 네비올로 품종의 레드 와인을 매칭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금류에는 화이트 와인이나 피노 누아, 갸메 같은 라이트한 레드 와인을 많이 사용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고 싶었어요. 이 디쉬는 간장 베이스의 영계 찜 요리로, 간장을 숙성시켜 깊은 풍미와 자연스러운 단맛이 우러나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단맛’과 ‘숙성된 간장’이라는 포인트를 중심으로 고민하다 보니, 오히려 탄닌감이 뚜렷한 네비올로가 어울릴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죠.

사실 네비올로는 그 자체로 강한 개성을 가진 품종이라, 섣부르게 페어링하기엔 조심스러운 면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엔 단맛과의 조화를 통해 그 거칠 수 있는 텍스처를 부드럽게 잡아냈고, 그 과정이 제게도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포인트는 속재료로 다진 양송이 버섯을 채워 넣는다는 점이에요. 바롤로와 피에몬테 지역이 트러플로 유명하다는 점에 착안해, 이 버섯의 풍미를 통해 네비올로의 테루아와 감각적으로 연결해 보고 싶었습니다. 네비올로를 숙성시켜 매칭했더니, 그 특유의 느낌이 요리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습니다.

저번 시즌에도 네비올로를 사용했었지만, 이번에는 같은 품종 안에서도 또 다른 뀌베를 선택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어요. 동일한 포도라 해도 그 안의 디테일이 바뀌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시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변주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한국 주류나 칵테일에 대한 시도도 인상 깊습니다.

맞습니다. 늘 고정관념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동소주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이나, 한국 사과와인 등 다양한 주류를 페어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히든 물냉면'이라는 콘셉트의 칵테일은 안동소주, 미나리 오일, 볶은 현미 시럽, 세이지 허브를 조합해 차갑게 서빙해요. 이는 디쉬 속 미나리와도 연결되고, 각 페어링이 시각과 미각 양쪽에서 연결될 수 있게 기획한 것이죠.

 

2025년, 솔밤이 돔 페리뇽 소사이어티에 합류했습니다.

네, 2025년 봄, 솔밤이 돔 페리뇽의 글로벌 셰프 커뮤니티인 '돔 페리뇽 소사이어티'에 선정되었습니다. 브랜드 파트너십을 넘어, 창조와 정밀함이라는 철학을 함께 나누는 상징적 소속이에요. 전 세계 126명의 셰프와 소믈리에가 매년 빈티지를 매개로 감성적 해석을 공유하는 이 공동체에서 저희도 영감을 교류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돔 페리뇽을 첫 샴페인으로 페어링에 사용하고 있어요. 고가의 와인이지만, 손님에게 '기억에 남는 한 순간'을 선사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또, 돔페리뇽 빈티지 뿐 아니라 P2를 페어링에 추가하거나 변경할 수 있고, 단독으로도 글라스 와인으로 주문해 접근성 있게 경험할 수 있는 것도 솔밤만의 특별한 장점이죠. 최고의 샴페인으로 시작하는 식사는 많은 분들에게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을 수 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돔 페리뇽은 겉으로는 남성적이고 강렬해 보이지만, 마셔보면 아주 섬세하고 다층적인 아름다움을 지녔습니다. 사실 셰프님을 보면 항상 이 샴페인이 떠오릅니다. 겉보기와 다르게 섬세하고 정교한 요리를 하시거든요. (웃음)

 

많은 도전을 하며, 2024 코리아 소믈리에 오브 더 이어 우승 등의 좋은 성과를 내셨는데요.

늘, 소믈리에에게는 ‘꾸준함’이 중요합니다. 공부와 업무를 병행하며, 일상의 경험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합니다. 대회 한 달 전에는 새벽 4시까지 업장에 남아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고요. 6분간의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위해 4분 30초짜리 대본을 구성하고, 각 동작과 말투까지 초 단위로 나눠 반복했습니다. 이런 시간이 없었다면 절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거예요.

 

이 직업은 '일'과 '공부'가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하나를 이루기 위해선 둘을 따로 떼어놓고 각자에 집중할 필요도 있어요. 단순히 근무만 채우는 것으론 성장할 수 없습니다. 저는 지금도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솔밤의 헤드 소믈리에로서 어떤 팀 문화를 만들고 싶으신가요?

헤드 소믈리에는 혼자 빛나는 자리가 아닙니다. 우리 팀 모두가 평등한 전문인으로 손님을 응대해야 하며, 각자의 개성과 직관이 살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팀원들에게 많은 압박을 주기도 합니다. 유연하게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요. 궁극적으로는 제가 없는 15년, 20년 후에도 이 팀이 올바른 철학과 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기틀을 다지고 싶습니다.

 

솔밤 팀워크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솔밤의 가장 큰 강점은 팀원들이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자의 역할이 명확하면서도, 서로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 유연함이 있어요. 그것이 팀워크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단순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동료라고 부르지 않아요. 우리는 정말 한 팀입니다. 각자 주어진 역할 안에서 최선을 다하되, 누군가 힘들어하면 주저 없이 손을 내밀고, 또 자리를 비우면 그 공백을 자연스럽게 메워주는 구조가 되어 있어요.

 

무엇보다도, 감정의 결이 잘 맞는 팀이에요. 서로의 피로감이나 긴장감을 빠르게 캐치하고, 언어적 소통 외에도 눈빛이나 분위기로 서로를 이해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요. 이건 오랜 시간 함께 쌓아온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솔밤 팀이 함께 성장해 나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저는 팀 전체가 유기체처럼 작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 혼자 성장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팀이 성장해야 나도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이를 위해 구성원 개개인이 각자의 위치에서 스스로 책임감과 주도성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와인 리스트를 구성할 때도, 제가 모든 걸 독단적으로 정하기보다는 팀원들과 함께 토론하고, 의견을 반영합니다. 때로는 주니어 팀원이 제안을 하면 그 의견을 적극 반영해 리스트에 올리기도 해요. 그렇게 하나하나 경험이 쌓이고, 그 경험이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 줍니다.

 

리더로서 팀원들과의 소통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직한 피드백과 감정을 조율하는 것이에요. 칭찬이 필요한 순간, 또 단호하게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을 잘 구분하고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리더의 말은 의도보다 뉘앙스가 더 크게 전달되기 때문에 말의 방식, 표현의 강도를 굉장히 조심하려고 해요. 그리고 모든 피드백에는 '성장'이라는 방향성이 내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항상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어요. "틀려도 괜찮아, 하지만 모르고도 지나치진 말자." 실수를 했더라도 피드백을 통해 배우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진짜 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솔밤 소믈리에 팀의 개성과 방향성은 어떻게 구축되고 있나요?

저희 팀의 철학은 정형화된 소믈리에가 아닌,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소믈리에입니다. 저는 팀원들에게 메뉴얼화된 서비스만을 강조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손님의 흐름을 읽고, 그 감정에 공감하며 테이블을 이끌 수 있는 감각입니다. 그런 능력은 틀에 갇혀선 절대 생기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각자의 강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도록 무대 위에서의 주도권을 팀원들에게 넘깁니다. 다만, 그 무대가 객관성과 전문성 위에 있어야 하기에, 항상 기본기는 철저하게 다지도록 하고 있어요. 소믈리에의 언어, 말투, 서비스 동선, 글라스 핸들링까지...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디테일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리더로서의 자신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지금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더 많은 의견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요. 리더라는 자리는 때론 냉정함을 요구하지만, 결국엔 따뜻함이 팀을 이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언제나 팀원들이 저를 편하게 느끼길 바랍니다. 언제든지 다가와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때로는 불편한 진실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가 솔밤에서 바라는 리더십은 완벽함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리더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 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오늘 내가 한 말이, 한 행동이, 누군가의 성장을 도왔는가?" 그 대답에 부끄럽지 않게 매일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성장하며 팀원들에게 바른 모법이 되고 싶어요. 언젠가는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는 것이 제 커리어의 중요한 마침표가 될 것입니다. 아직도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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