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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동연 헤드 소믈리에





소믈리에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친한 형이 바텐더 일을 하고 있었어요. 형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막연히 ‘나도 술을 다루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죠. 처음에는 와인에는 관심이 없었고, 칵테일을 배우고 싶었고요.


그 당시 제가 사촌 형에게 수학 과외를 받고 있었는데, 형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소믈리에는 어떻냐’며 묻더라고요. 사촌 형은 이런 일과는 관련 없는 사무직에 종사하는데, 주변에 소믈리에로 즐겁게 일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나 봐요. 그래서 이 직업은 무엇일까 조금씩 찾아보다 보니 금세 매료되었어요. 소믈리에에 관한 책도 사고, 직업 전망도 알아보고요. 그리고 <와인 바이블>이라는 책을 사서 몇 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어요. 그래서 대학 진학을 할 때, 친척 형이 저희 부모님도 함께 설득을 해 주기도 했고요. 그렇게 소믈리에학과에 진학하며 인연이 시작했어요.


와인 공부는 어떻게 하셨나요?

대학에 들어가 와인을 처음 배울 때, 마시는 것, 즉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점점 공부하다 보니 결국 지식이 90%더라고요. 와인에 관한 대화를 나눌 때, 깊이를 알 수 있는 것은 지식이고, 경험하고 마셔 보는 와인들도 지식의 체계가 있어야 의미 있게 기억이 됩니다. 지금은 계속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많은 직업이 그렇지만, 소믈리에 또한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직업이고 그 양도 방대합니다. 대신 확실한 보람과 보상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솔밤에 오기 전에는 어떤 경험을 쌓았나요?

대학에 들어가 학업과 함께 현장 경험을 쌓았어요. 분당 정자동에서 중국요리를 내는 와인바에서 서빙 업무부터 와인 서비스, 칵테일 제조까지 일하고 재미를 붙이며 직업에 대한 확신을 얻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바로 정식당에 들어갔어요. 입사 1년 반 후에 주니어 소믈리에라는 타이틀을 얻었고, 5년간 근무했네요. 정식당에 있는 동안 선배와 동료에게 큰 도움과 자극을 받았어요. 일하면서 계속 자격증, 대회 준비를 했으니까요. 선배들이 늘 질문을 달고 살았어요. 제대로 공부를 해 왔는지 일하는 중간 중간 와인에 관해 상세한 질문을 계속 했고, 본인들도 계속 공부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줬고요. 그런 모습이 저에게 이 직업에 대한 귀감이 되고, 나도 늘 발전하는 방향으로 일을 대하며 성장하겠다는 태도가 정립된 것 같아요. 앞서서 묵묵히 걸어가는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계속 쫓아갔죠.



솔밤과의 인연이 어떻게 생겼나요?

정식당에서 5년 정도 근무를 하고, 다른 곳에서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며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던 시기였어요. 제 정체기를 스스로 깨고 나갈 용기가 없어서, 환경을 바꾸고 싶었지요. 일단 퇴사를 하고 한 달 남짓 흘러서, 어떻게 방향을 정할까 고민을 하던 중 엄태준 셰프님을 소개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면접을 보는데, 아직도 셰프님의 초롱초롱한, 열정 가득한 눈과 표정과 억양이 기억나요. 셰프님이 솔밤을 위해 준비해 온 지난 3년간의 흔적들을 설명하고, 앞으로 나아갈 10년 비전을 설명해 주시는데 제가 믿고 따라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같이 일하는 동료를 단순히 고용한 직원이 아닌 한 팀의 팀원으로 대한다는 점, 그런 것들이 녹아 있는 ‘솔밤의 엔딩 크레딧’ 같은 것들이 정말 신선했고요. 지금까지는 내가 개인적으로 더 발전하고 열심히 살아야 개인의 총 합인 팀도 발전한다고 생각했는데, 팀 자체가 함께 성장한다는 것도 자극이 되었어요.



오픈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어땠나요?

소위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라고 하죠. 셰프님, 제너럴 매니저님, 그리고 저 셋이 카페를 돌아다니며 회의와 사무작업을 했어요. 때로는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아서 카페 직원들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요. 거의 석달간 이런 생활을 하며 레스토랑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 어떻게 공사를 하고, 매장을 준비해 나가는지를 배우는 값진 시간이었어요. 소프트 오픈을 하고도 2021년 말까지는 서비스 팀원이 총 3명뿐이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 하며 끈끈한 팀워크를 쌓은 것이 기억에 남아요. 예약이 10명이 채 되지 않던 초기, 그러다가 10명을 넘었을 때, 그리고 20명을 넘었을 때, 미쉐린 스타를 받았을 때. 모든 순간 순간 계속 성장한다는 확신과 함께 행복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팀원들의 결속력이 더욱 단단해진 느낌을 받아요. 일을 하며 서로 호흡도 잘 맞고요. 저희가 서비스를 하며 추구하는 가치가 더욱 명확하게 공유된 덕분입니다. 저 또한 솔밤에서 식사를 하며 감동을 받았던 부분이 '고객 응대'였기에, 이 부분을 정말 의미있다고 여기며 매사에 임합니다. 따뜻하고, 포근하지만 동시에 날선 섬세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는 저희가 한 팀으로써 '솔밤'의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주류 리스트를 구성할 때 무엇에 가장 중점을 두나요?

소믈리에에게는 와인 리스트가 제 얼굴과도 같아요. 그래서 리스트의 디테일에 신경써요. 오타가 있는지 없는지 작은 부분까지도요. 그리고 소믈리에가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리스트를 만드는 것보다, 솔밤의 요리와 잘 어울리는지를 우선 고민합니다. 와인 리스트에서 어떤 바틀을 주문한다고 해도 솔밤의 요리와 좋은 어울림을 보일 수 있도록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솔밤의 리스트를 방대하게 꾸리고 싶어서 다양한 생산자와 빈티지를 구비하는 것에 열정을 쏟았는데, 와인 수백여종을 갖추게 된 지금은 오히려 조금 더 깊이 있는 리스트를 만드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한 지역에도 스무 곳 가까운 생산자들의 와인을 소개했지만, 앞으로는 그 생산자들의 리스트는 더 정제해 지역의 테루아를 대표할 수 있는 명가들을 보여주고, 오히려 그들의 다양한 뀌베와 빈티지, 와인을 접할 수 있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전 직장에서 배운 것은, 초기에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핸들링하는 문화나 리스트를 잘 잡아 두면 그것이 오랜 시간 전통처럼 이어진다는 점이에요. 저 또한 솔밤만의 음료 문화를 만들어나가며, 10년 후 다른 헤드 소믈리에로 이 일이 이어진다고 해도 초반의 것들이 귀감이 될 수 있도록 숙제를 풀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까지 솔밤의 와인 페어링 중 가장 소개하고 싶은 것은…

동료 소믈리에들의 반대가 가장 많았던, ‘굴과 소테른’ 페어링이 기억에 남네요. 코스의 가장 첫 페어링 메뉴로 신선한 굴에 디저트 와인인 리외섹 소테른을 매치했죠. 다들 의아하다고 생각했지 만 막상 먹어 보면 맛있고, 그래서 만족스러웠던 페어링이에요. 색다른 재미도 있고, 고객들의 기억에도 잘 남고요.


일단 생굴 자체가 부드러우면서도 탄탄한 식감과 짠맛과 미네랄, 단맛, 해산물 특유의 바다냄새가 있어요. 여기에 흔히 페어링을 한다면 샴페인 같은 것을 매치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해서는 디쉬의 매력도, 페어링의 개성도 살리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했어요. 굴에 상큼한 사과와 딜 주스, 그리고 고소하고 바삭한 크루통이 들어가는데 어린 빈티지의 소테른과 매치하며 산뜻하고 영한 산미가 더해져 단맛의 집중도가 굴 풍미의 여운을 더욱 극대화시켜준다고 봤어요. 이렇게는 처음 드셔 본다며 좋아하시던 고객분들의 얼굴이 기억에 남습니다.


솔밤의 사과와인, 솔밤 안동소주도 선보이셨는데요.

늘 고정관념을 탈피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손님과 타 업장에도 영감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싶고요. 그리고 외국에서 손님이 방문했을 때 우리 문화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한국의 다양한 주류를 알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와인 페어링 메뉴에서 첫 샴페인으로 돔페리뇽을 선보이고 계신데요.

지금은 메뉴에서 돔페리뇽 2013 빈티지를 페어링의 첫 샴페인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돔페리뇽은 상당히 고가의 샴페인이라 페어링 메뉴에 넣기가 쉽지 않은데, 좋은 날 솔밤을 찾아 주신 분들께서 더 기억에 남을 경험을 하실 수 있도록 고민하다 보니 이렇게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소믈리에로써, 돔페리뇽은 첫눈에 굉장히 강인하면서도 남성적인 느낌이 두드러지는 샴페인입니다. 하지만 정작 테이스팅을 해보면 '반전 매력'처럼 섬세하고 다층적인 레이어가 마음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샴페인이지요. 셰프님께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저는 셰프님을 보면 꼭 돔페리뇽 같다는 생각을 해요. 겉보기와 다르게 굉장히 섬세하고 아름다운 요리를 하시기에, 이 샴페인과 참 잘 어울리죠.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저보다 더 잘 하는 소믈리에를 많이 영입하고 키우고 싶어요. 와인을 배우려면 솔밤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생길 수 있도록 이 안에서 최선을 다 해야죠. 그리고 3스타 레스토랑이 부럽지 않은 솔밤의 리스트를 만들고 싶어요. 서비스를 빛내는 기물과 지식, 실력, 와인리스트 같은 것이 솔밤의 느낌으로 잘 어우러지게 해야겠지요.


개인적으로는 와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다는 꿈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마스터 소믈리에도 준비하고, 전세계 소믈리에들과 겨루는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싶고요. 이왕 제 인생을 걸고 시작한 와인에, 더 높은 성취를 향해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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