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요리를 시작했나요?
지금 솔밤에 오기까지 저의 10년을 되돌아보면,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획보다는 우연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흘러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아주 어렸을 때에는… 사실 패션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패션 사업을 하셔서, 워낙 그런 쪽을 보고 자란 이유도 있었고요. 고등학교 진학을 하던 시기, 디자인 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솔직히 성적이 안 돼서 못 갔어요. (웃음) 하지만 그냥 성적에 맞춰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싶지는 않았어요. 직업 특성화고를 찾던 중, 요리가 눈에 들어왔죠. 거기서부터 우연 같은 인연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도 파인다이닝, 셰프, 이렇게 딱 정해 둔 것은 없었어요. 페이스트리에도 관심이 많았고, 칵테일도 흥미로웠죠. 그리고 선생님의 도움으로 국제 요리 경연대회 같은 자리에 자주 참가를 하게 되었어요. 5년간은 ‘대회’라는 키워드로 쭉 달려 온 것 같아요. WACS(World Association of Chefs Societies; 세계조리사연맹)에서 개최하는 국제대회 등 정말 다양한 자리에 참가하고, 수상도 하며 그때 요리의 매력에 완전히 빠지게 되었는데, 너무 즐거웠어요. 요리가 적성에 정말 잘 맞는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게 된 시기이니 지금까지 제 일을 이어 오게 하는 큰 힘이 된 셈이에요.
대회의 요리와 레스토랑의 요리도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정말 많이 달라요. 평가를 받게 되는 기준 자체가 다르니까요. 대회에서는 아무래도 특정한 주제가 있고, 제한된 시간 안에 그 주제를 좋은 기술로 표현해내는 특유의 문법이 있어요. 하지만 레스토랑에서의 요리는 전체적인 조화와 안정적인 느낌, 셰프의 색, 변하지 않는 일관된 퀄리티 등이 중요해지죠. 그렇게 5년여간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의 길을 고민하다 보니, 취업과 그 안에서의 일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매번 프로젝트처럼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지치기도 했고요. 그래서 파인다이닝 업장에 관심이 가게 되었어요.
물론 대회를 하면서 얻은 점도 정말 많아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한국을 벗어나서 ‘요리’라는 주제로 모인 전 세계의 사람들을 보며 시야가 넓어졌어요. 제가 정말 내성적인 성격인데 그런 성격도 좀 바뀌었고, 수상을 하며 자신감도 많이 생겼구요. 일을 처리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요리에서는 정리가 정말 중요한데 정리를 습관화하는 계기가 되었죠. 아무래도 한정된 시간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야 하다 보니 타임라인을 잘 짜야 했는데, 지금 업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타임라인을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짜고 시간 안에 완성된 플레이트를 만들어 내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아! 여러가지 주제에 맞게 레시피도 짜 보는 것도 경험이 되더라고요. 좋은 레시피로 요리를 잘 만들어내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부분이지만, 경력이 많지 않고 어린 나이에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레시피를 구상하는 기회가 많지 않거든요. 그 당시에 식재료의 조합이나 저만의 레시피를 짜 보려는 시도가 지나고 나니 모두 자산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홀 서빙도 경험하셨다고 들었어요.
네, 미쉐린 가이드에도 등재된 톡톡에서 홀 서빙을 1년정도 경험했어요. 언젠가 저도 오너 셰프로제 레스토랑을 만들고 싶은데, 홀 경험은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고 최대한 빨리 직접 경험해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홀에 서 보니, 주방에서의 관점과는 또 많이 다르다는 것이 체감되더라고요. 주방에만 있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부분, 예를 들어 와인을 페어링하는 것이라거나 손님들의 반응, 식사를 즐기는 방식까지 경험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에 대해 배웠어요. 그리고 홀 직원들의 입장과 주방의 입장이 굉장히 다를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하게 되고요. 제겐 정말 소중한 시기였어요. 다른 친구들도 그런 경험을 꼭 한 번씩 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요.
그 이후 솔밤에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톡톡에서 1년간 홀 경험을 쌓고 정식당에서 3년간 요리를 배운 뒤 솔밤에 오게 되었어요. 정식당은 많은 조리학도에게도 그렇겠지만, 한국 다이닝 시장의 우상 같은 존재잖아요? 규모도 크고, 그만큼 체계가 정말 잘 잡혀 있기도 하고요. 오랜 시장 한국 파인다이닝의 역사를 만들어 온 곳이니만큼 배울 것도 많아요. 저처럼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특히요. 6개월간의 수습 기간을 거치고, 헤드 셰프를 도와 인차지를 하며 음식이 나가는 순서를 컨트롤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관할하는 부분에 대해 정말 많이 배웠어요. 조리 실력도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워낙 규모가 있다 보니 프로틴 파트에서도 생선과 육류가 아예 나누어져 있는데, 그만큼 본격적으로 파인다이닝의 요리를 속도감 있게 경험하기 좋았고, 실력이 늘기 좋았던 환경이었어요.
그리고 진로에 대해 한 번 더 고민이 찾아오던 무렵, 가오픈 중인 솔밤에서 디너 코스를 경험했는데 정말 충격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이렇게 완결성 높은, 섬세하고 조화로운 플로우의 식사를 경험했던 기억이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웠고, 요리에 반한 것 같은 감정이었죠. 여기서 같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픈 후 3개월 남짓 지난 겨울에 저도 팀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일하면서 보신 솔밤의 모습은 어떤가요?
솔밤은 셰프님의 가치관과 색이 정말 많이 묻어나는 레스토랑이에요. 재료도 정말 좋은 것만 고집하고, 타협이라는 게 절대 없는 분이죠. 메뉴도 이렇게 매 계절 완전히 바꾸는 것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닌데 이런 부분을 체계적으로 이끄는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아요.
한편으론 리더십과 팀원에 대한 태도도 인상깊어요. 메뉴를 바꾸는 과정에서도 저희에게 많은 의견을 듣고 적절히 반영하고, 스스로 자기 분야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세요. 사실 처음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는 남편(솔밤의 고동연 소믈리에)을 통해서 들었는데요, ‘이런 셰프님이 현실에 정말 있단 말야?’라는 말이 제일 먼저 나오더라고요. 일례로 레스토랑에서 대관 행사 같은 것을 할 때 인센티브를 직원에게 나눈다거나 하는 경우는 주변에서도 거의 본 적이 없는데, 그런 부분에도 항상 팀원을 배려하시고 명절이나 여름 휴가 같은 부분도 현실적으로 챙기며 함께 일하는 방법을 정말 많이 고민하시거든요. 직원을 온전히 믿어 주고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어 주시고요.
일하는 입장에서 제일 인상깊은 것은 ‘엔딩 크레딧’이라는 형식으로 메뉴판에 저희 이름이 모두 들어간다는 점이에요. 확실히 일하는 데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임하게 되는 것 같아요. 팀워크에도 좋은 영향이 있고요.
수셰프의 역할에 대해 알려주세요.
솔밤의 주방은 파트가 나뉘어져 있기는 하지만 팀으로 움직이는 느낌이에요. 저도 그 일부로써 서로를 서포트하는 데 힘쓰고 있고, 계절별로 메뉴를 바꿀 때 많이 참여하며 기물과 식재료 발주 관리 같은 사무적인 일들도 담당하고 있어요.
사실 제가 수셰프 직급을 달게 된 지 얼마 안 되었어요. 지금도 수셰프 역할을 하며 로스터의 업무를 병행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직도 제 역할을 책임감 있게 잘 하는 부분이 숙제라고 생각해요. 무엇을 해야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깊은 신뢰를 얻고, 레스토랑에 도움이 될까 고민하고 있어요.
리더십은 팀원들이 만들어내요. 본인이 하는 일을 굉장히 잘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와의 관계 속에서 리더십을 얻는 것과는 또 별개죠. 사람들이 없으면 레스토랑이 운영되지 않아요.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하며 하나의 목표를 추구해야 좋은 결과가 나오는 곳이에요.
파인다이닝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요리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의 ‘완성’ 아닐까요? 전체적인 흐름에 맞춰서 시작부터 끝까지 강약을 조절하며 디테일까지 완벽을 추구하니까요. 나중에 비스트로를 운영하더라도 이런 부분을 배우고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서 지금 즐겁게 일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꿈이 궁금합니다.
남편이 소믈리에이다 보니, 언젠가는 저희 부부의 와인바를 운영하고 싶어요. 맛있는 음식과 와인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죠. 음식의 수준도 높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조리 테크닉이나 식재료, 디테일 같은 부분에서 차별점을 두고 싶어요. 솔밤에서 일을 하며 음식과 관련된 역량을 더욱 키워 나가고, 그 외에도 사람들을 관리하고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부분을 경험하며 전체적인 힘을 갖추고 싶어요.
아참, 남편과 같은 업장에서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요?
매일, 종일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에요. (웃음)
대화가 잘 통하고, 관심 분야가 같고, 서로의 일을 이해하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서는 부딪칠 일이 없지만 서로를 만나는 시점의 경계가 모호하다 보니 이게 과연 좋을까 싶기도 하고요. 하하하. 그래도 휴무일이 같으니 같이 여행을 다니기는 정말 좋아요. 저희 둘 다 여행을 좋아해서, 코로나 시기 동안 국내의 왠만한 지역은 모두 방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 중에서도 안동을 여행했던 게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좋았어요. 고택에 묵으며 그 호젓한 분위기도 정말 좋았고, 안동의 전통주나 지역 명물, 음식도 참 기억에 남아요. 그런데 이렇게 솔밤으로 오게 되어 또 안동과 인연이 이어질 줄은 그 땐 생각도 못했죠. (웃음)
아무튼, 솔밤이라는 레스토랑이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제 꿈을 키우며 제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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